HOME > 회고록 > 회고록16   
 
제자들과 여행중에
승님이 가신지 3년이 되는 날이다.
그 당시 나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 채 잠이 가시기도 전인 이른 아침에 너무도 갑작스런 스승님의 부음을 받았다. 모두들 실감이 나지 않는 표정으로 하나 둘 메디칼 센터 영안실로 불안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몽롱한 기분에 낮과 밤이 몇 번 바뀌는가 싶더니 모란 공원 한 귀퉁이에 나는 그렇게 서 있었다. 벌건 속 살을 그렇게 드러내 놓고 있는 무덤 하나와 꾸물거리는 하늘을 바라보다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불과 며칠 전 인사동 사루비아 다방 한 구석에서 동문 그룹 활성화를 위해 제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주도하시던 스승님의 모습이 너무도 뚜렷한 모습으로 다가오자 삶의 허무함과 황당함에 전율마저 느끼게 한다.
선생님은 본인의 대학 스승이시며 그림쟁이의 길을 가는데 커다란 힘을 주신 분이다. 무엇보다도 자유스러움을 강조하시며 당시 유행이나 시류에 휩쓸리는 젊은 미술 학도들에게 경종을 울려 주시던 몇 분 안되던 분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술의 길은 작가의 예술적 기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사는 예술가로서 새로운 시대 정신을 구현하는데 있다는 신념으로 조그만 세속적 타협도 용납 치 않으셨던 바위 같은 꿋꿋함과 의연함을 지니셨던 분이다.
본인에게 스승님과 같이 했던 대학 4년이란 시간은 무엇보다도 작가정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근원적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던 시기였다. 외모만큼이나 언제나 조용하시고 서두르는 법이 없으셨던 스승님의 모습을 떠올리면 넘치지도 말고 모자라지도 말라던 선현들의 가르침이 다시 한번 떠 오르게 된다. 있는 듯 없는 듯 하시면서도 제자들 모두에게 격의 없이 소주잔을 기울여 주시며 어느 누구에게도 소홀함이 없이 관심과 애정을 가져 주시던 스승님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오는 것은 스승다운 스승도 없고 학생다운 학생도 없는 요즈음 세태와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강국진 스승님!
스승님은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생전에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남아있는 제자들 모두가 열심히 삶을 살아가며 좋은 작업을 위해 나름대로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저희들은 항상 스승님 곁에 있습니다. 스승님 앞에 서서 조금도 부끄럼 없는 작가의 길을 걸을 것을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다짐하며, 스승님 편히 쉬십시오.

- 최은규(화가), 1995.7.5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