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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3년전 3월 1일 공휴일 아침 강국진형이 타계 했다는 전갈이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았다. 바로 일주일 전에 어느 전시장에서 형을 만나서 웃고 떠들고 했던 너무나도 건강하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형이 누워있을 「메디칼 센터」 영안실로 갈 때 주체 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신호등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기어이 신호위반 스티커를 장충동 사거리에서 떼고 차를 몰고 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만 계속해서 눈물 딱고 코 풀고 해봐야 어디서 그렇게도 많은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강변의 타살> 해프닝을 마치고, 왼쪽부터, 정찬승, 강국진, 정강자
밤에 돌아와 그림을 그리려 했지만 형의 얼굴이 창문마다 나타나서 나를 드려다 보고 있었고 형과의 수 많은 추억들은 나를 계속해서 눈물 젖게 했다. 강국진 형의 예고없는 타계는 나에게 그토록 큰 충격을 주었다.
아 - 형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도 영혼도 영계도 있다고 믿고 싶다. 형이 영계로 떠난지 3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형이 우리 곁에 문득 나타 날 것 만 같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형은 참 이상한 사람이다. 일주일 만에 만나간 10년 만에 만나건 언제나 늘 같이 있어온 오빠처럼 남편처럼 편안하고 정답다.
말수가 적은 형은 표정도 별로없어 그저 소리없이 씩웃는 것이 고작인데도 형과 같이 있으면 왜 그리도 재미가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형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나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언제나 형의 주위에는 후학들과 친구들로 벅적거렸으니까. 지독하게 가난했던 우리들의 젊은시절 형과 정찬승과 나는 거의 날마다 만났다. 형의 SPACE에서 혹은 내 화실에서. SPACE는명동 뒷골목 4층 꼭대기에 있었는데 잡일거리(포스타, 삽화등)를맡아서 열심히 일 했지만 수입은 늘 시원찮아 항시 형의 주식은 라면이었다. 라면이 주식인 형에게 뻔질나게 드나들며 라면 축내는 친구들이 (나를 포함해서) 끊이질 않았다.
어느날 나는 모처럼 밥을 얻어 먹게 되었는데 반찬은 김치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국이 일품이었다 무우국이었는데 향긋한 냄새와 맛이 너무 좋아서 물어 보니 씨익 웃으며 "비스켓 먹다 남은걸 넣었어" 한다. 다정한 형은 내 화실에도 자주 들렸는데 나 역시 라면이 주식이지만 그날따라 형과 먹을 라면도 떨어져 아이들 그림지도 끝나면 가게에 가서 외상이라도 얻어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형은 어디서 돈이 생겼는지 쌀 한봉지를 사와선 하얀 쌀밥을 맛있게 지어놓고 씨익 웃으며 "밥 묵자-아" 한다.
그 무렵 우리들(강국진, 정찬승, 정강자)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작품에 열광했다. 67년 (청년작가연립전), 68년 (투명풍선과누드),(한강변의 타살), 69년 (문화연 장례)등 연달아 발표했다. 예상한대로 우리들은 사회와 문화계로부터 말 할수 없는 냉대를 받았다. 그들은 우리를 '문화깡패' '미친짓이나 하는 타락한 예술가'로 취급해 버렸고 심지어 문화인을 자처하는 일부의 지식인들도 우리들을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평했다. '저들은 이제 곧 정신병원에 갈 것이다.' 이 말은 모멸과 질타만 받았던 우리들의 새로운 작품들에 대한 인정해 주지 않는 그 시대의 기록이었다.
생전의 강국진
사랑하는 형이시여!
지나고 보니 우리는 정말 멋진 작품을 했지요? 그것은 구태의연한 기성세대에 대한 도전이었고 반항이었으니까요. 동양의 예술이 전수의 연속이라면 서양의 예술은 도전과 반항의 연속이였음을 살펴볼 때 우리들의 젊은 날이야말로 당연히 할 일을 했지요.

사랑하는 형이시여!
형이 남기신 작품이 일천여점이나 된다니 놀랍고 기쁩니다. 기억 나셔요. 형! 우리들의 젊은 날 진리를 역설했죠.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 라고. 그런데 살아보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죠. 더우기 형이 영의 세계로 가신 후에도 형이 남기신 작품으로 유작전을 하게되니 묵묵히 일만 하여온 형이 몹시도 그리워 눈물이 고입니다.

- 정강자(화가), 19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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