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회고록 > 회고록9   
 
1951년 8.15 해방의 기쁨과 6.25 사변의 비극을 한꺼번에 경험한 수난과 시련의 국민학교 시절이었다. 우리들은 지금의 부산진구 서면에 위치한 성지국민학교에 입학을 했다. 가야리에서 서면에 위치한 학교까지의 거리는 6~7km쯤이나 될까. 동네에서 신작로에 들어 설 때까지 논과 밭을 지나 개울을 건너야 했고, 신작로를 벗어나선 또 논과 밭, 징검다리와 철길을 지나 문둥이가 살고 있는 허리가 토막 난 토굴을 콩알이 된 마음으로 건너야 비로소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금성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중앙)
평소 땐 그런데로 괜찮지만 비나 눈이 올 때나 겨울엔 고통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3학년 때 우리 동네에 동평국민학교가 생기는 바람에 우리들의 긴 여로가 끝나기는 했지만 성지국민학교를 떠난 후로는 반듯한 교실에서 공부해 본 기억은 전혀 나질 않는다. 학교가 지어질 때까지는 임시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쫓겨 나간 일본인이 쓰던 공장에서 공부를 하다 그 곳에서도 쫓겨 가야리 동사무소 터에서 가교사를 짓고 수업을 하다 학교가 완공되기가 무섭게 6.25사변이 터져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는 바람에 학교는 군인들이 쓰고 우리들은 여름이면 산에서 야외수업을 하고 비나 눈이 올 땐 천막교실에서 공부를 해야만 했다.
우리반 63명은 거의가 인ㆍ친척들로 구성되었고 6학년 졸업할 때까지 같은 반이었다. 내가 기억나는 국진이의 집은 큰 신작로에서 학교로 꺽어지는 가장 번화한 위치에 자리잡은 깨끗한 일본식 기와집이었고, 그의 집에선 담배, 소금, 밀가루 따위를 취급하는 배급소였다. 당시 우리나라가 처한 시대적 상황은 우리 민족 역사상 최대의 혼란기로 파괴, 굶음, 죽음의 연속적 혼합 속에 아수라장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지옥보다 못한 생지옥이었다.
보리는 커녕 먹을게 없어 나물 류의 풀은 찾기가 어려웠고 나무 껍데기 마저 남아나질 못했다. 보리만 익으면 먹을게 생기는데 그 동안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람들은 죽어져 갔다. 보릿고개란 말이 이즈음 생긴 말로 짐작된다.
쓰러져 가는 초가삼간 좁은 방에서 식구들이 많아 다리 한번 펴 보지 못하고 쪼그리고 지낸 짐승처럼 살아 온 우리들에게 국진이 집은 살아있는 대궐이었고 낙원이었다. 깨끗한 일본식 기와집, 잘 정돈된 가구와 장식품,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고급 음식들, 하얀 얼굴에 인자한 눈으로 고운 미소를 띠우시며, 코를 흘리며 옷에서, 몸에서 때 국물이 주루룩 흐르는 우리들을 눈 살 한번 찌푸리지 않으시고 어루만지고 챙겨주시는 귀족형 미인 어머님은 우리들에겐 살아있는 보살이요 천사이셨다. 까만 학생복에 하얀 칼라가 돋보이게 입은 국진이의 성격도 조용하고 온화한 인정미 있는 소년으로 기억된다.
금성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세월은 흘러 우리들의 나이가 50이 넘어서야 서울에서 살고 있는 몇 명이 서로 연락하여 드디어 1988년 영동에서 강 국진, 강 기하, 권 영돌, 나 길연, 백 동학, 송 석선, 양 병률, 이 영로, 이 진남, 정 태열, 채 한국, 최진호 …등 12 ~13 명이 국민학교를 졸업한 지 40여 년 만에 모임을 갖게 되었고 생활터전을 옮긴 몇 명을 제외하고는 '재경동이회' (동평국민학교 제2회)란 이름으로 처음엔 한 달에 한번, 요즘은 계절마다 한번씩 모임을 갖게 되었다. 이 모임에 국진이는 스스로 연락을 맡아 약속 장소를 정하고 만날 때의 경비도 부담하고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덕분으로 우리들은 마음 놓고 옛날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강국진 교수

당신은 국민학교를 졸업한지 40여 년만에
역시 까만 양복에 하얀 칼라를 한 대학교수로 나타나
생활의 노예가 되어 축 늘어진 우리들을
때 국물이 주루룩 흐르는 코 흘리게 시절로 끌고 가
다시 한번 논과 밭 징검다리를 지나 신작로에 접어들고
신작로를 벗어나 다시 논과 밭 개울과 철길 문둥이 토굴을 지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학교로 가게 했고
학교 운동장에서 공차기 , 깡통차기, 돌치기 놀이도 하고
공해와 오염에서 멍청한 사람으로 둔갑한 우리들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해주었소.
공차기를 할 땐 수문장을 하던 당신이
말타기를 할 땐 말이 되던 당신이
물놀이를 할 땐 밥을 짓겠다던 당신이
분단장을 맡아 멋지게 이끌겠다던 당신이
숨바꼭질 할 땐 술래잡이가 되겠다던 당신이
병정놀이를 할 땐 대장을 하겠다던 당신이
잘 못했을 땐 책임을 지고 기합을 받겠다던 당신이
미술시간에 내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다짐했던 당신이
여학생들의 고무줄을 남김 없이 끊어버리겠다던 당신이
음악시간엔 고향의 봄을 멋지게 불러보겠다던 당신이
우리 반의 모자라는 물건을 책임지고 배급하겠다던 당신이
그 약속을 지키지도 못하고 당신은 잠깐 다녀올 사람처럼 그 먼 곳을
그렇게 쉽게 가버렸습니까.
수문장이 없는 축구시합은 어떻게 하고
대장이 없는 병정놀이를 어떻게 하라고 당신은…
그렇지만 당신의 머리에 담겨진 지혜의 샘물과
눈 빛에 감도는 온유한 사랑
손에 쥐어진 의욕과 용기
가슴에 담겨진 자비와 관용
입가에 떠오르는 여유와 웃음
호주머니에 채워진 자신감과 인내심은 우리들의 생활 속에 , 정신 속에 깊숙히 파고들어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1995. 8

- 양병률 (경기여고)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