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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미술평론가)
Sape 3 1973년작 30*30 은박지에 목판화

국진씨는 한국미술계에서는 매우 다양한 활동상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 가운데의 한 사람이다. 십여년 동안에 걸쳐서 그가 보여준 활동은 주로 실험적인 경향이었다. 1965년 ‘논꼴’ 창립 맴버로서 한국미술계에 등장한 그는 1967년 그 해의 최대 관심사였던 한국청년작가연립전에 참가했으며 이후 해프닝 등을 통해서 그의 예술적 잠재력을 실험한 바 있으며 근자에 와서는 예술의 개념에 관해서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이때까지의 강국진씨는 대부분의 젊은 한국 작가들이 그러했듯이 실존적인 주체성을 출발점으로 했던 활동으로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의 실험성이란 바로 실험적인 자아를 뜻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주어진 현재의 상황을 넘어서 혁신적으로 의욕적으로 미래를 지향하려는 순간으로부터 이들의 현존의식은 싹트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을 뛰어 넘으려는게 말하자면 이들의 예술의욕인 셈이었다.

다시 거듭하자면 창조와 행동의 중심적인고 절대적인 출발점으로서의 실체적인 자아가 항시 이들의 관심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적인 개체가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요인들로부터 전혀 자유롭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그는 점차 깨닫기 시작한 것만 같다. 상대적으로 말해서 한 예술가의 자율성이란 사실 그 사회와 역사의 산물일지도 모른다는 단열한 정신을 제 것으로 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Sape 1976년작 46*62 평판화

1975년 이후의 그의 관심사는 체계나 구조에 대한 문제로 크게 기울고 있었던게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한편 그는 예술을 일(travail)의 형식에 의해서 다시 환기해 보려는 의욕을 보여주기 시작했으며 구체적으로 판화작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판화란 주지하는 것처럼 인간이 직접 화면으로 터치되는게 아니라 간접화의 수련을 최대한도로 극복해야 하는 제어의 힘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어의 힘이야말로 체계의 내적 원동력이 되는거며 전체는 제어를 전제로 해서만 그 무한성과 안정성이 보존된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판화예술에 관해서만 해당되는게 아니라 오늘의 예술이 당면하고 있는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정신을 강국진씨는 판화라는 메티에를 통해서 터득해 보려는 것으로 생각되었다는 뜻이다. 이번 그가 보여주는 판화는 그러나 매체 해석으로부터 출발하려는 기술적인 능력에서 보다도 시대적인 내용은 강하게 풍겨주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회화 본래적인 입장으로부터 면을 해석해 보려는 의도로 생각되며 그의 예술이 기술적인 지식에서보다도 예술적인 지혜로부터 싹터왔음을 말해주고 있다.
1978년 11월 유 준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