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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영 (미술평론가. 홍익대학교 교수)
국진이 타계한지 세 돌을 맞아 회고전과 함께 화집을 발간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우직 허허하고 소담하기만 했던 그의 성품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낌이 없었다면 아마도 그의 작품들은 아직도 미몽의 공간 속에 은닉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제 이렇게 밝은 빛 아래에 전모를 드러낸 것을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울 뿐만 아니라 인간의 한 평생이란, 또 예술이란 무엇인지가 새삼 물어지기도 한다.
여기서 필자가 강국진의 최후기라 할 수 있는 80~90년대의 작품들을 다룸에 있어서 유념하게 되는 것은 그가 생애에 있어서 가장 왕성했던 40대의 시절을 보낸 것이 바로 80년대라는 것과 그 이전의 형성기. 말하자면 그가 20대와 30대의 시절을 보냈던 60~70년대의 총체적 성과가 가시화 된 것도 바로 이 즈음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80년대와 92년 작고할 때까지 그의 성숙기의 예술을 논구하는 일은 그의 생애를 관류하고 있는 입지 내지는 원초적 사유의 진원지가 무엇이었고 이것이 어떠한 형성 과정을 거쳐 80~90년대를 옳게. 그리고 좀 더 깊이를 더하여 고찰할 수가 있을 것이다.
역사의 빛 1989년작 227.3*181.8 캔버스에 아크릴

먼저 그의 생애를 받쳐 주고 있는 원초적 사유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작가들에 있어서 대개 이와 관련된 생각은 일찍이 생애 초기 시대에 개안되는 듯하다. 강국진에 있어서 그 점 또한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던 65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26살 되던 해 그가 직접 창단 멤버로 활동했던 <논꼴>의 동인지 <논꼴아트> 에 기고한 글 <나의 작품 속의 말>은 이렇게 기술되고 있다.

' 내 작품의 대상은 무한한 내제적 심경에서 출발한다. 감정은 내면적 필연의 욕구적 소산이다, 나의 특유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내 정신세계를 뚫고 폭발하는 무수한 기호형(記號形)에서 오는 직열된 감정, 이것이 나의 캔버스 위에서 표현되고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위 글이 시사하고자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이를테면 자신의 특유한 내면 감정과 선, 바탕(캔버스의 표면), 기호에 의해서 구성되는 형식 등이 그것들이다. 그는 이 두 개의 요체들을 통해서 직열된 감정을 표출하려는데 큰 뜻을 두었다. 말하자면 감정의 표출은 그의 작품들이 지향하고자 했던 푯대요 선, 바탕, 기호 형식은 이를 받쳐주는 지지체 였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강국진의 초기 발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새로운 비전의 형성, 전형의 창조가 이룩되어야만 한다. 물론 이것은 한국적 풍토에서 일어난 것이라야만 될 것이다. 제 경향의 거부, 새로운 정신적 풍토, 새로운 질서의 모색, 이것이 나의 작품 태도이다, 1965년 우리들의 시점에 서서 우리의 젊은 미술은 낡은 정신적 자세를 탈피하여 우리들의 새로운 풍토적 조형을 창조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사명인 동시에 우리들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모색 속에서 가능하다.> 이 언급은 그의 작품 태도가 겨냥했던 총체적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예컨대 새로운 비젼과 전형의 창조라든가 새로운 풍토와 질서의 모색을 강조한 것은 오늘의 이 시점에서 재음미 하자면 <한국적 풍토>의 재창조를 위한 새로운 <역사주의>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강국진의 60년대는 물론 80년대까지 줄곧 변함없이 지지되어 온 원초적 사유는 한국성을 저변에 둔 신역사주의적 시각과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사항들 - 이것들은 간단히 모더니즘의 강렬이라고 잘라 말할 수 있다. - 을 추가해 볼 수 있다. 이를 풀어 말하자면 소위 모더니즘의 정신을 외세의 그것 보다는 우리 자신의 역사적 맥락으로 해석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의 바로 이러한 기본자세를 그의 형성기 초기였던 60년대 중반에 수립했고 또 의식에 두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이 생각을 73년 첫 개인전 <서울 :명동화랑>으로부터 89년 마지막 개인전 <서울:미술회관>에 이르기까지 수미 일관하게 추진했다.
서성록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이를 잘 말해 준다.
<필자는 강국진의 작품과 만났다. 평면의 구조적 통일을 꽤해 온 그의 작품과의 대면은 의외로 반갑다. 그것은 스스로 지켜오던 형식적 굴레를 무너뜨리면서 그 무엇에 대한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을 뚜렷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관된 주제를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의 대조 속에서 구하고자 하는 듯하다. 그의 작품은 회화에 대한 기대감을 박탈한다. 그림은 근엄, 순수, 우아해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전도 시킬 뿐만 아니라 그럼으로써 사장된 미적 차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 작품을 제작하는 밑바탕에는 고급 모더니즘에 대한 외의. 단조로운 평면구조에 대한 불만, 엘리티시즘에 대한 비웃음이 깊이 깔려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의도적인 반란'은 이런 측면에서 작가가 성취하는 또 하나의 값진 회화적 결실일 수가 있다.> (89년 월간미술 6월호 전시 하이라이트)
이에 덧붙여 말하자면 입지를 투과시키는 데 60~70년대라는 실험과 모색기가 절실히 필요 했으리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80년대의 강국진은 그의 근본 사유들을 여과 시키는 데 장시간에 걸친 중간 과정이 필요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65년에서 66년에 이르는 시기의 <논꼴 동인전>에서의 활동을 필두로 67년 <한국청년작가연립전>, 67~70년에 걸친 행위 미술전, 70년대 초중반의 <앙데팡당전>, <무한대전>, 후반의 <영토전>, 그리고 80년대의 <서울 방법전>을 차례로 열거해 볼 수 있고 이러한 제 과정들을 거쳐 그의 초기 입지에서 말기의 성과에 이르는 제 성과들이 이루어 질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하에서 80년대의 성과를 자세히 검토해 보기로 한다.
필자는 이미 80년대 강국진의 작품 전모에 대해 언급하면서 89년 마지막 개인전을 계기로 그의 업적을 총괄한 적이 있었다. 그 첫 부분의 몇 절을 여기에 옮겨 보자면 이러하다.
역사의 빛 1989년작 227.3*181.8 캔버스에 아크릴
<작가 강국진의 경우를 특히 염두에 두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가 70년대, 한국 현대 미술의 형성작업의 제일선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그가 거반 87년을 전후로 해서 조심스런 탈바꿈을 시도해 오고 있는 바 50대 작가로서 변모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공간 89년 7월호)
당시의 나의 회고의 글이 말해 주는 것은 그가 89년 제 11회 개인전에 내 놓았던 <역사의 빛> 연작들이 내포하고 있는 의의를 밝히어 말하려는 데 뜻이 있었고 이러한 나의 의도의 핵심은 물론 그의 80년대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리해 보려는데 있었다.
주지하는 바 80년대 후반에서부터 92년 타계할 때까지 그가 최후기에 붙였던 명제인 <역사의 빛>은 그 이전, 80년대를 포함한 그의 15년여의 탐색을 응집시켜 보여주었던 <가락> 시리즈의 일대 혁신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그의 최후기의 작품들을 정점에 놓고 80년대 나아가서는 그의 성취시대의 작품들을 언급하자면 <역사의 빛>과 <가락>시리즈의 상호관계를 거론해야 할 것이다.
마침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자가 89년 그의 개인전에 부친 <서문>이 충실한 내용을 담았고, 특히 이 글의 목적에 전적으로 부합되는 내용이기에 당시를 회고하는 한편 80년대 강국진 예술의 총체적인 면면을 본석하고 포옹해 보는 뜻에서 가감없이 전문을 아래에 옮겨 보기로 한다. <이하 89년 개인전(미술회관) 서문 전문>
작가 강국진이 그의 대망의 10회전을 맞아 마침내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려고 한다. 73년에 첫 개인전을 가진 이래 15년을 한결 같은 집념으로 선조작업에 몰두 해 온 그가 87년부터 서서히 탈바꿈을 꿈꾸던 끝에 88년과 금년에 이르는 지속적인 실험을 통해 마침내 하나의 새로운 <방법>을 착상하는데 이르렀다.
그가 내놓은 근작 <역사의 빛>은 그의 최근의 이러한 새로운 착상의 첫 실험적 결과를 보여준다. 이 일련의 작품들은 85년까지 그가 즐겨 다루었던 선조작업의 하나인 <가락>시리즈와 크게 괘를 달리한다. 그는 이제 10수년간을 전심을 다했던 일단의 작업들에다 괄호를 매겨두고 진실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새로이 설계하기 위한 '역사의 빛'을 찾아 나서기에 이르렀다.
우연히도 그가 내놓는 새로운 작품의 명제 <역사의 빛>은 그의 선조작업 15년사를 마감하면서 깨달은 작가 자신의 역사에 대한 통찰의 마음을 담고 있어 주목된다. 그것은 그가 한국미술의 전통 내지는 진수라 믿었던 '선조성' (Linerarity) 의 현대적 표현에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천착하던 끝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러한 과정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 계속해서 언급함으로써 그의 '역사의 빛'의 의미가 밝혀지리라 생각한다.
선조성의 현대적 표현에 관련된 문제들에 관한 한, <가락>시리즈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선조'가 우리 민족의 고유한 기질에서 발현된 것임과 동시에 이 발현이 특정한 시간인 '현재' (또는 '현재')에 살고 있는 특정한 '개인'을 통해서 또한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 가능성을 작품에 옮기는 절차로서 그가 선택한 것이 칠하는 대신 <긋는 행위>를 반복하는 일이었다.
긋는 행위의 반복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은 화면의 상하로 그어지는. 흔히는 다양한 색조의 길쭉한 선들의 이음새가 평면 전체의 <구조>를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녹색, 연한 갈색, 암바, 퍼플, 코발트, 크림슨레이크, 오커 등 거의 모든 색상들을 즐겨 다루면서 이것들을 붓에 의한 선으로 그어서 평면을 채울 수 있는 만큼 가득히 채우는 일이 긋는 행위의 반복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화면의 구조를 선조의 구조로 해결하려는 그의 착상은 세부적으로는 이러한 선조 구조의 배면에다 언덕이나 산의 능선, 도식화된 파선, 대칭선, 마름모꼴, 때로는 산과 나무 등 우리의 산야와 전승 문화재의 일부 형태를 배열하고 암시함으로써 이것들을 배경으로 해서 그어지는 선조구조가 그것의 '선조적 특성'에 있어 보다 더 명료해지는 효과를 얻는데 이르렀다.
선조적 특성에 의한 화면의 <평면적> 해결은 작품으로 하여금 선조에 의한 평면의 고유한 <기질적 발현>을 성공적으로 가져오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발현은 물론 집합적인 것과 작가 개인적인 것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자기표현의 방법이라 생각되었으며 이러한 자기표현의 방법을 특히 선조구조와 이 선조 구조를 지지해주는 캔버스와 색료, 그리고 무엇보다 평면이라는 조건 등 일체의 지지체의 구조적 통일에 의해서 해결하려 하였던 점에 특징이 있었다.
<가락>시리즈는 이렇나 결과의 작품들이었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러한 결과에서 그 다음으로 이어질 <역사의 빛>을 준비하기 위해 어떠한 통찰을 자신에게서 발견하고 있는가. 그것은 선조구조와 평면구조의 일원화에 의해 선조성의 정신적 발현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민족의 집합적 정신이나 작가의 개성적 기질성은 화면이 가지는 지지체의 특성과 이 특성을 선조구조의 특성으로 탈바꿈시키려는 부단한 기도를 통해서 잘만하면 성공적으로 드러내어질 수 있고, 그것들의 융합에 의한 정신적 발현이 '현재적으로' 가능하고 또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의 빛>은 이처럼 <가락>시리즈에서 결론 지어진 결말 위에서 시작한다.
그 하나의 과도기적 이행과정이 87년 우정미술관에서 가진 석판화 초대전에 출품된 <빛의흐름 >연작들에서 발견된다. 이 작품들에 나타나는 특징적 면모들은 종래의 섬세한 선조구조를 과감히 해체하면서 굵고 짧은 불규칙한 선 획들과 원, 사각형, 마름모꼴, 점묘들과 같은 복합적인 요소들이 이루는, 보다 자발적이고 우연적인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빛의 흐름>은 명백히 <가락>의 구조를 해체적으로 처리한 것이었다. 사실상 <역사의 빛>은 이러한 해체의 방법을 가지고 필자가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구조>로 발전 시키려는 데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역사의 빛>은 <빛의 흐름>이 보여주고 있는 가락의 구조를 해체하는 절차와 이 절차를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려는 구조로 바꾸어 놓으려는 시도를 함께 보여준다. 해체하려는 절차는 종래와 같은 미세 정교한 필선들의 선조 구조를 대범하고 비정교한 선들로 분해하고 여기에다 사각형, 사각형 등 면적인 요소들을 도입함으로써 흡사 그의 60년대 엥포르멜 시대의 상황을 재현하고 있는 듯하다. 자연과 우연히 놀이적 요소를 동반하면서 힘을 안들이고 가장 분망스러운 결과를 연출하려는 듯한 분위기에 이르고 있다.
해체하는 절차가 다시 이야기하려는 절차로 이어지는 과정은 화면을 좌우로 이등분해서 왼편에다 예컨데, 기마상이나 옛 한국화에 등장하는 바위, 부적에 나오는 독수리, 불상들을 그리되 오른편에는 예컨데 나무 숲이나 꽃, 무지개, 화려한 숲, 풍경 등을 연상시키는 다소 복잡한 도상들을 삼각형이나 사각형 원이나 곡선, 대각선들을 도입 함으로서 처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처리하는 화면 절차는 흡사 종래와 같이 일견 다색의 선조 구조를 실현하듯 하면서도 종래의 미세 구조 (선조구조)를 과감히 부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에 있었던 것들 (즉 왼편의 주제들)과 현재 볼 수 있는 것들 (즉 오른편의 주제들)을 대조시킴으로써 <형상들의 이야기>를 구성하려는 시도로 나타나고 있다. 이 경우 가령 기마상은 기마상을 잘 그려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단지 과거의 정황을 표상하기 위해서 그려지고 DT다. 마찬가지로 기마상에 대응하는 오른쪽의 풍경 또한 단지 현재의 정황을 나타내도록 하는 데서 배려되었다.
이와 같이 형상들의 이야기 구조에 의해 이루어지고 DT는 작품의 구조는 전적으로 종래의 선조에 의한 <형식구조>로부터 형상에 의한 이야기 구조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야기 구조는 근본적으로 과거 vs 현재, 밝음 vs 어두움, 복잡 vs 단순, 낡은것 vs 새것 따위와 같은 대립적 상황들의 <통합>을 모색함으로써 이루어지고 있다. 어떠한 경우에는 형상을 빌리지 않고 단순히 색면과 약간의 선조들을 동반한 가장 단순한 색면 대조를 보이는가 하면 - 이 경우 특히 明과 暗의 대조와 통합을 의미하려는 것이다. - 가령, 왼편의 녹색 바탕에 불상을 그려 명상하는 자태의 단순성을 나타내고 이와 대조되는 복잡한 상황을 오른편에 배열하는 경우와 같이 단순성과 복잡성의 이야기 구조를 극히 종합적으로 얻으려는 경우도 있다.
'가능한 한, 종래와 달리 더 많은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구체적인 것, 형상적인 것을 도입하려 했다.'고 말하는 작가의 진정한 의도는 이렇나 관점에서 볼 때 <가락>시리즈가 추구했던 것의 반대급부에 이미 도달하고 있다. 그것은 <가락>시리즈가 추구했던 것의 반대급부에 이미 도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종래의 평면형식의 구조를 이야기 구조로 전환시킴으로써 화면에서 단순히 선조구조의 구조적 매력이나 장점에 매혹되지 않고 화면을 다시 작가의 영감이나 잠재의식과 같은 체험들을 가볍게 그러나 진솔하게 토로하는 언어의 구조로, 요컨데 이야기를 통해서 체험적 현실들을 서술하려는 데 뜻이 있다.
강국진은 마침내 어려운 곡예를 통해서 자신의 또 한번의 변모의 역사의 첫 시작을 이룩하고자 한다. 누구에게나 근본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기도한다는 것은 모험에 속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많은 시행착오의 위험부담이 수반될 것이지만 이를 감내하고 극복하기 위한 실험들이 결국 성공을 쟁취하고야 말 것이다.
15년의 선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그가 다시 변신하고자 하는 의지로써 내놓은 <역사의 빛>은 그의 그러한 최근 성취의 일단을 앞질러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1989.5)
위 글은 앞질러 강국진의 필생의 작업들을 마무리해 보여 주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92년 불의의 타계가 없었던들 아마 그의 전도는 보다 더 일보된 마감의 일에 집념했을 것이다. 이 글을 마무리함에 있어서 다시 한번, 짧다면 짧았던 그의 생애를 회고 할 때 그의 초기 시절에 세웠던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사유들이 끊임없이 생애의 전 과정을 관류하고 있었던 것에 주목하게 된다.
그의 마음이 바다처럼 넓고 소담했던 만큼 그의 예술 또한 넉넉하고 꾸밈이 없었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 들이되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렸으며 항상 <한국적 풍토>를 떠나지 않았던 품성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아야 할 것이다.
타계한지 삼주기를 맞아 이렇게 화집을 꾸미고 회고전을 갖게 된 것이 다행스럽고 기쁘기 그지없다.
그의 명복을 빌며 이 글로 내가 누렸던 우의를 되새김하고자 한다.
19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