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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미술평론가. 월간미술1989.6)

국진전(5.19~24.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전시장을 갈 때마다 무거움을 느낀다. 아니 그것은 낯설음이라 해야 좋을 것이다.
네모꼴 전시공간, 네모꼴 캔버스, 또 그 위에 얹혀진 냉랭한 물질들,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고 따분한 것들과의 대면이 되풀이된다. 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낯설은 것임이 분명하다. 반드시 전시장이나 캔버스 따위가 네모꼴이나 기계화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규격화된 미술과, 회화의 절대적 권위를 상징하는 듯한 평면은 한편으로는 예술에 대한 제도적인 구속을 뜻하는 것일 수 있고, 더 솔직히 말하면 창조력의 고갈을 뜻하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낮설게 보이는 것이며, 이런 무기적 접촉은 우리에게 그릇된 예술관을 부채질할 위험마저 있다.

역사의 빛 1991년작 76*90 캔버스에 아크릴

필자는 강국진의 작품과 만났다. 평면의 구조적 통일을 꾀해온 그의 작품과의 대면은 의외로 반갑다. 그것은 스스로 지켜오던 형식적 굴레를 무너뜨리면서 '그 무엇'에 대한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을 그 작품을 통해서 뚜렷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타이틀은 <역사의 빛>이다. 그는 일관된 주제를(짐작컨데)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의 대조속에서 구하고자 하는 듯하다. 하지만 필자는 그 주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지 못한다. 필자의 관심은 오히려<역사희 빛>이 견지하는 조형적 방식과 그 태도이다. 그의 작품은 두 개의 분할된 평면공간을 하나의 통합된 평면공간으로 엮어내는 이채로움을 띤다. 그리고 두개의 분할 공간은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유사한 모습을 취하기도 한다.

우선 전자의 경우 관음보살상과 기하학적 모양의 대조, 기마상과 추상적인 것과의 대조와 같은 엉뚱한 이미지들이 잇대어 있고, 후자의 경우 나무와 산의 대조, 감성적 표현과 상상적 조형의 대조 등이 서로 맞물려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표현방식의 관점에서 볼 때 역시(흥미롭게도) 고의적인 조악성, 치졸성을 느끼게 한다. 서툰 붓자국, 뒤틀린 평면구성, 대담하다 못해 허술한 표현력 등.

그의 작품은 회화에 대한 기대감을 박탈한다.

그림은 근엄, 순수, 우아 해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전도시킬 뿐 아니라 그럼으로써 사장된 미적 차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

역사의 빛 1989년작 130*162 캔버스에 아크릴
회의, 단조로운 평면구조에 대한 불만, 엘리티시즘에 대한 치졸, 그리고 뭔가 켕기는 듯한 맛을 느끼게 하는 '의도적인 반란'은 이런 측면에서 작가가 성취하는 또 하나의 값진 회화적 결실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