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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수 (미술평론가. 월간미술1995.11월호)
국진 타계 3주기를 맞아 그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이 '강국진을 기리는 모임'을 만들고 추모전을 꾸몄다.
70년대 작품들에서 작고직전의 92년 작품까지 일당에 모아졌다. 강국진의 작가적 편력은 대체로 4개의 시기로 구획해 볼 수 있다. 65년 <논꼴 동인>의 출범에서 67, 68년 청년작가연립회로 이어지는 60년대 후반을 제1기로 본다면, 오브제 중심의 작품을 시도했던 70년대 전반기를 제2기로 설정해 볼 수 있다.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경까지 주로 섬세한 선조에 의한 전면화의 경향을 제3기로 묶어 볼 수 있고, 80년대 중반부터 작고시까지의 이미지와 즉흥성을 혼유시켰던 경향이 제4기로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제1기에 해당하는 청년시대 강국진의 이미지는 제스처가 앞서는 격정적인 표현의 세계에다 화면을 벗어난 행동하는 예술가로서의 해프너로 굳어져 있던 편이다. 그가 참여한 최초의 그룹 <논꼴 동인>은 추상표현주의의 만연이 가져온 미술계의 숨막히는 분위기에서 이탈하려는 젊은 열기들이었지만, 여전히 이들의 화면 표정도 추상표현의 영역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60년대 중반에 등단한 <논꼴 동인>과 그 주변의 세대가 추상표현주의의 마지막 세대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데 별이의가 없을 것이다.
역사의 빛 1989년작 227.3*181.8 캔버스에 오일
67년에 결성되어 당시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열렸던 <청년작가연립전>은 추상표현주의 이후의 다양한 실험을 종합적으로 보여 준 전시였다. 강국진을 중심으로 신진 동인들이 출품했던 작품 성향은 오브제와 오늘날의 개념으로 설치 계통의 환경 작품들로 특징지어졌다. <청년작가연립전>은 전시 공간에서 뛰쳐나와 행동하는 의식으로 자신들의 방법을 개진하여 주었는데, 잇따른 시위와 해프닝이 그 것이다.
강국진은 수차례에 걸친 해프닝에 직접 구성과 실연으로 참여했다. 이 무렵의 해프닝은 단순한 행위의 발전적 문맥으로 보다 사회 비판적 문명 비판적 색채를 강하게 띰으로써 한국적 상황의 독특한 산물로 간주되었다.
70년대 강국진의 작품 경향은 오브제가 중심을 이루었다. 강한 환경적요소를 띠었던 <청년작가연립전> 출품작에 그대로 맥락된 것이었다. 이번 전시엔 이 계통의 작품이 거의 출품되지 못한 애석함이 있으나 사진도판으로나마 당시 작품의 성향과 이를 통한 작가의 의식을 충분히 추적해 볼 수 있었다.
강국진이 다시 타블로로 돌아온 것은 제3기에 해당되는 70년대 중반.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은 대부분 3기의 것과 마지막으로 분류된 4기의 것이다.
제3기의 회화 작품의 선조에 의한 전면화로 특징지어 볼 수 있다. 섬세하게 흐르는 선조들이 빽빽이 화면을 누비는 계열이다. 그는 이 계통의 작품들을 <가락>이란 명제로 시리즈화하고 있다. 가늘게 분할된 선조들이 화면을 덮어가는, 이 전면화 또는 단색화 경향은 당시 한국미술의 일각에서 전개되고 있었던 모노크롬의 추세와 간접적 연계를 가지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방법의 모색으로 보인다.
역사의 빛 1989년작 227.3*181.8 캔버스에 오일
80년대 중반에 와서, 선조의 바탕에 중첩되는 삼각띠나 또는 그와 유사한 쌓여 올라가는 형상이 은은히 배어 나오게 처리함으로써 더욱 풍부한 표정을 시도한다. 80년대 중반 이후 90년대 초까지의 제4기에 해당되는 시대로의 전환적 기미로 파악된다.
제4기의 작품은 <역사의 빛>이란 시리즈로 큰 맥을 이루고 있다. <가락>이니 <역사의 빛>이 다같이 고유한 미의식에의 나름의 표상을 기도했음을 시사하고 있는 듯하다. <역사의 빛>은 더욱 구체적인 실천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시기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밝고 경쾌한 맛을 준다. 대단한 절제가 요청되었던 <가락>연작에선 좀처럼 만날 수 없는 호쾌한 기운이 화면을 누비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붓 자국은 보다 분방하고 색조는 화사한 톤으로 얼룩진다.
선열한 색채와 민화적 이미지
또한 이 시기의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기본적 구성은 화면의 분절이다. 좌우로 이등분한 화면이 한쪽은 추상적 표현적인 흔적들로 채워지는가 하면, 다른 한쪽은 보다 구체적인 상형으로 등장한다. 토우 물고기 불상 수석 새 등의 이미지들이 간단없이 출현한다. 그것도 현실의 그것이기보다는 민화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을 차용하고 있다. 선열한 색채들의 어우러짐과 단편적으로 나타나는 민화적 이미지의 융화는 그의 조형적 관심을 적절히 표명해 주고 있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자기 세계로의 자신을 획득해가는 무렵에 닥쳐왔다는 점이다.
강국진은 1939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홍익대 서양화과와 건국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64년 김인환 남영희 정찬승 한영섭 등과 함께 <논꼴 동인>을 조직했으며, 이후 <무 동인> <오리진 동인> <청년작가연립전>등에서 활동하면서 전위 미술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8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인 민화적 이미지를 차용한 <역사의 빛>연작을 발표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한성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92년 심경근색으로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