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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후 아내는 남편을 위해 아침을 짓고, 식사를 마친 남편을 위해 물 한잔을 준비하고, 일상을 나서는 이의 양말과, 윗저고리를 챙기며 행복에 안주하려 할 때 "이 일은 내가 충분히 할 수 있오. 부디 당신의 일을 하시오"라고 말해 그는 아내의 그림 작업이 결혼과 함께 멈춰 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다고 한다.

그들의 결혼이 만혼이었지만 1976년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사고는 요새 사람이지 결코 당시의 인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트인 사고를 지녔던 사람임에 분명하다.


1992년 3월 갑자기 혼자 남겨진 그의 아내는 꽤나 오랫동안 세상과 등지고 살았다. 혼자 남겨진 사실을 인지하는데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 지는데 또 몇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슬픔을 딛고 문득 세상 밖을 쳐다 본 어느 날 그녀가 세상과 멀어진 만큼 자신뿐만이 아니고 남편의 존재도 세상과 멀어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살아 생전 하루에 두 마디 말을 듣기 힘들 정도로 말수가 적었던 사람이었지만, 늘 친구와 선후배들의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묵묵히 노력했던 고인의 옛 모습을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에 아내의 마음은 부산해졌다. 본인 말고는 이 일을 맡아줄 후손이 그들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마저 인생을 마쳤을 때 점점 작은 점이 되어 사라져버릴 고인의 모든 것 (고인의 작품과 한국 미술계에 대한 고인의 애정)을 최선의 방법으로 지키고 싶었다.

간 작가들의 전시,전람회는 한정된 공간과 시간, 그리고 한정된 작품으로 소개되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런 현실을 뛰어넘어 시간과 공간을 극복할 수 있는 온라인 상의 작가 갤러리인 강국진닷컴을 기획하여 고인의 작품과 생애를 찬찬히 기록하고 영구 보존이 가능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번 일은 그녀에게 세상에 다시 발을 내딛는 용기를 주었고, 자신이 남편을 위해 여전히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고맙고 큰 축복이라고 말한다.


강국진닷컴은 작가의 작품 뿐 아니라 생전 작가의 폭넓었던 활동에 대한 기록을 충실히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 이유는 작가는 한국 현대 미술사에 꼭 언급되어야 할 인물이며, 여전히 한국 현대 미술사를 위한 연구과제로 많은 후배와 후학들에게 연구 대상으로 평가 받는 인물이기에 작은 것 하나 소홀함이 없이 기록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따라서 방대한 작품의 양과 충실한 내용은 미술학도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이며 작품을 즐기고자 하는 일반인 에게는 언제 어느 때나 작가의 작품과 그의 정신세계를 향유할 수 있는 새롭게 시도된 온라인 상의 개인 전시회로 평가되는데 손색이 없을 것이다.

강국진닷컴은 작가의 작품을 기법과, 주제별로 일목요연하게 둘러 불 수 있고, 6,70 년대 한국미술사에 새롭게 시도된 작가의 입체, 해프닝 작품과 활발했던 동인 시대를 논꼴, 청년작가연립전, 무한대전, 방법전이라는 화두에 오롯이 담았다.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은 '나의 갤러리'에 담아, 보는 이의 취향대로 천천히 다시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또한 작가와 작품에 관련한 평과, 보도자료, 에피소드 등 다양한 장르를 모아 작가 강국진의 정신세계와 작품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충실히 준비했다. 특히 고인을 길이는 지우들의 회고록은 살아 생전의 작가의 폭넓고 깊었던 인간관계를 엿보게 한다.

현재 입체(59점), 해프닝(12점), 유화(295점), 판화(160점), 수채화(37점), 메일아트(6점)을 선별하여 강국진닷컴을 오픈하였고, 향후 계속 자료를 업데이트 할 예정이다.

모쪼록 고인의 뜻을 길이고자 작가의 모든 것을 공개하는 부인의 뜻이 강국진닷컴을 방문하는 모든이에게 깊이 이해되기 바라며, 무례한 방문자들로 인해 작품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변화를 발전이라고 속단한다.
나는 이번 작업을 통해 쉼없이 작업에 몰두하면서도 언제 어느 곳 에서도 쉽게 변하지 않고 자신을 지킨 작가의 모습을 보았다. 나 역시 그의 모습을 닮아가며 늙고 싶다.

- 김희영(사이트 운영자)